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쑹자오런 암살 사건 (문단 편집) === [[선후대차관 사건]] === 분노한 국민당 측은 국무총리 자오빙쥔과 내무비서 홍술조의 소환을 요구했고 사법부도 응하여 이들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다. 이에 위안스카이는 황싱이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는 공안사건을 조작하여 베이징 지방재판소 명의로 황싱에게 소환장을 발부하여 여론을 무마시키는 한편 쑹자오런 암살이 국민당 내부의 소행이라는 선전을 하였다. 그리고 위안스카이는 쑹자오런 암살의 결정적인 증거물들이 발표된 4월 26일, 자오빙쥔, 재정총장 주학희, [[루정샹]][* 단 루정샹이 관여되었다는 것은 원세개 평전의 기록인데 다른 데는 큰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원세개 평전의 오류이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주역은 자오빙쥔과 주학희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등으로 하여금 국민당의 반대에 무릅쓰고 5개국 은행단으로부터 2,500만 파운드에 달하는 거액의 차관을 빌리는 협약을 강행했는데 이것이 [[선후대차관 사건]]으로 번지게 된다.[* 원세개 평전에서는 이것이 아예 국민당 토벌의 마음을 먹고 군사비용을 빌리려고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대차관 사건의 파장이 심각해지면서 결국 자오빙쥔은 국무총리에서 사직하여 직예총독으로 좌천되었고 1914년 2월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 역시 위안스카이의 소행이라는 추정이 많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